빚은 나쁜 건가요
2026-10-03
"빚은 무조건 빨리 갚아야 한다"는 말도 있고, "좋은 빚은 오히려 자산이다"는 말도 있습니다. 둘 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겁니다. 오늘은 이 둘을 같은 자로 재보겠습니다.
빚을 나누는 기준 — 갚을 돈이 나에게 남는가
모든 빚을 같은 잣대로 보면 안 됩니다. 기준은 하나입니다. 이 빚으로 얻은 것이, 갚아야 할 이자보다 더 큰 가치를 나에게 남기는가.
학자금 대출을 생각해봅시다. 이 대출은 보통 시중 대출보다 금리가 낮게 설계돼 있고, 그 돈으로 얻은 학위나 기술이 앞으로의 소득을 실제로 높여줄 가능성이 있습니다. 갚아야 할 이자보다 얻는 가치가 클 가능성이 높은 빚에 가깝습니다.
반대로 리볼빙은 어떨까요. 이번 달 카드값을 다 못 갚고 일부만 결제하면, 나머지에 대해 연 15~20%대의 높은 이자가 붙습니다. 이 돈으로 산 건 대부분 소비재라,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남거나 늘어나지 않습니다. 높은 이자만 쌓이는 구조입니다. 좋은 빚과 나쁜 빚을 가르는 기준은 "빚의 존재 여부"가 아니라 **"이 돈이 만들어내는 가치와 이자의 크기 비교"**입니다.
5편의 복리를 반대 방향으로
5편에서 복리는 저축에도, 빚에도 똑같이 작동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. 이번 편에서 그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보겠습니다.
빚을 여러 개 갖고 있다면, 갚는 순서가 결과를 크게 바꿉니다. 수학적으로는 금리가 가장 높은 빚부터 갚는 게 전체적으로 가장 적은 이자를 내는 방법입니다. 연 3%짜리 학자금 대출을 서둘러 갚느라 연 18%짜리 리볼빙을 방치하면, 학자금 대출에서 아낀 이자보다 리볼빙에서 불어난 이자가 훨씬 큽니다. 급한 마음에 아무 빚이나 먼저 갚기보다, 금리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.
신용점수는 빚의 유무가 아니라 관리 능력을 봅니다
흥미로운 점은, 빚이 아예 없는 사람보다 대출을 받아서 제때 갚아온 기록이 있는 사람의 신용점수가 더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. 신용점수는 "이 사람이 빚을 잘 관리하고 약속대로 갚는가"를 보는 지표라서, 그 기록 자체가 없으면 오히려 평가할 근거가 부족해집니다. "빚 없이 사는 게 최고"라는 직관과는 조금 다른 현실입니다.
한계 — 이 설명이 안 맞는 경우
이 편은 대출을 권하는 글이 아닙니다. 어떤 빚이든 갚을 능력을 벗어나면 "좋은 빚"이라는 분류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. 학자금 대출도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담이 되고, 전세대출도 금리가 갑자기 오르면 계획이 틀어질 수 있습니다. 여기서 말씀드린 건 판단 기준이지, "이런 빚은 괜찮다"는 보장이 아닙니다. 빚을 지는 결정은 각자의 소득과 상황에 맞게 신중하게 내려야 합니다.
2부를 닫으며
6편부터 10편까지, 돈에 매겨지는 값 — 금리 얘기를 했습니다. 기준금리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, 신용이 얼어붙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, 장단기 금리차가 뭘 말해주는지, 빚을 어떻게 나눠 봐야 하는지까지. 다음 부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 세계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봅니다.